1954년 6월 7일.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27세에 이미 현대 컴퓨터의 모델이라고 할 ‘튜링 머신’을 고안했다. 

연산컴퓨터 ‘콜로서스’를 만든 게 1943년. 세계 최초로 알려진 ‘에니악’보다 2년을 앞선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난공불락이었던 독일의 ‘애니그마 암호체계’를 뚫고 들어갔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전 그는 적국의 교신 내용을 ‘수신자’보다 먼저 해독하고 있었다. “그가 없이도 연합국이 승리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는 단 한 가지, 자신의 성적(性的) 취향이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쓰레기처럼 내동댕이쳐진다. 

1952년 동성애 혐의로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그에게 10년간 감옥생활을 할 것인지, 아니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주사를 맞을 것인지 양자택일을 명령한다. 

에스트로겐 주사는 일종의 ‘화학적 거세(去勢)’였다. 

지속적인 여성호르몬의 투입으로 그는 치명적인 신체의 변화를 겪게 된다. 발기불능, 중추신경계 손상….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나날이 부풀어 오르는 유방(?)이었다. 

그는 더는 견딜 수 없었다. 

1954년 6월 7일. 튜링은 치사량을 정확히 계산한 뒤 시안화칼륨(청산가리)을 사과에 주사했다. 그리고 백설공주처럼 ‘독사과’를 베어 문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사회가 나를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순수한 여자가 할 만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그것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사형선고를 내린 동시대에 대한 야유였다. 

열다섯의 나이에 수학 교과서가 지루했던 천재 튜링. 그는 인공지능 개념을 처음 생각해냈다. “답이 컴퓨터에서 나왔는지 사람의 뇌에서 나왔는지 분간할 수 없다면 기계는 이미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죽기 전 그는 생명체의 형상 생성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신의 비밀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던 것은 아닐까. 

그 후 20여년이 흐른 뒤, 애플사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인류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을 때 그 이름을 ‘애플(Apple)’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모양을 로고로 택한다. 

‘진정한 컴퓨터의 아버지’에 대한 경의(敬意)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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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분신인 애플은 왜 사명이 애플이 됐을까. 그동안 잡스의 '신비주의적 함구'속에 애플 작명을 둘러싼 비밀은 온갖 추측을 더하며 IT업계에 하나의 수수께끼가 됐다. 이 의문부호가 5일 잡스의 영면과 함께 영원히 묻힐 뻔 했다. 

그러나 이 비밀이 35년만에 마침내 풀렸다. 잡스와 함께 1976년 애플을 공동창업한 스티브 워즈니악의 입을 통해서 였다. 

워즈니악은 잡스가 타계한 이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잡스가 공동체를 이뤄 경작되고 있었던 사과 과수원을 방문한 뒤 애플이란 이름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로고를 디자인한 롭 야노프 역시 과거 이와 유사한 발언을 했다. 그는 "잡스는 유기농 사과 과수원에서 일을 했고, '애플'이란 이름을 무척 좋아했다"고 전했다. 

야노프는 "잡스는 사과가 영양가가 풍부하고 포장하기도 쉽고 쉽게 손상되지도 않기 때문에 사과를 완벽한 과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잡스는 애플이 완벽한 회사가 되길 원했고, 다른 더 좋은 이름을 생각해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애플의 초기 광고를 제작했던 켈리 애드버타이징 & 마케팅은 애플의 초창기 로고는 온전한 사과 모양이었으며 1977년 애플2를 전자박람회에 소개하면서 현재의 로고와 비슷한 모양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또 한입 깨문 것은 '지식의 습득(acquisition of knowledge)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애플 로고의 의미에 대해선 다른 설도 있지만 잡스가 사망했기 때문에 워즈니악의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저널(WSJ)의 기자인 짐 칼튼은 1997년 출간된 책 '애플'에서 잡스가 당시 비틀즈의 팬이었기 때문에 비틀즈의 레코드 라벨을 흠모해서 회사의 로고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을 추모해서 사과를 로고로 썼다는 설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콜로서스를 발명한 튜링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드러나 당국에 체포된 이후 괴로워하다가 1954년 청산가리을 넣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먹고 자살한 인물이다. 

현대과학의 시초인 뉴턴의 만유인력에서 연유했다는 설도 있다. 

한편 워즈니악은 이날 인터뷰에서 잡스의 사망에 대해 "우리는 다시 찾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잃었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또 "애플의 제품이 특별하도록 만든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고인은 유산을 남겼다"며 잡스의 사망 이후에도 애플이 성공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http://goo.gl/yX2oc 
위키백과 (앨런 튜링) : http://goo.gl/CpF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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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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